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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발 강가로 나아가라

by 노-박 202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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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발 강가로 나아가라

에스겔1장1-3절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그발 강가로 나아가라
그발 강가로 나아가라

 

오늘 1장1-3절말씀을 보았지만 에스겔이 어떤 성경인물인지 전반적인 내용을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읽혀지기 힘든 책 하면 어떤 책이 가장 어려운가요? 아마도 레위기와 에스겔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기도 어렵고 난해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근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할 메시지가 꼭 있는 것 같습니다. 48장으로 되어있으니 대선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대선지서 소선지서가 있습니다. 큰일을 해서 대소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책의 분량에 따라 나눈것입니다. 대선지서는 아시는 것처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다니엘은 우우리에게 익숙한 말씀들이 많아서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유명한 말씀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과 다니엘의 차이를 잠깐 살펴보면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하기 전 활동했던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주로 "망한다, 망한다"는 경고를 통해 회개를 촉구했지만, 여전히 소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반면, 에스겔과 다니엘은 나라가 이미 망한 후 활동했던 선지자들로,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사역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둘 역시 크게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 총리에 오르며 3명의 왕을 섬기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정치적 회복을 가져오신 하나님을 선포하며 성공한 선지자로 기억되고 그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도 희망적인 교훈으로 자주 전해집니다.

 

반면, 에스겔은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제사장출신이었지만 그는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는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제사장는 성전에서 일을 하지만 이제 선지자 에스겔은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는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마치 실패한 선지자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의 사명은 성공 여부에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희망을 선포하며, 백성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습니다.

 

에스겔서의 방대한 분량과 깊은 메시지

에스겔서가 총 48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하실 말씀이 많았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만큼 우리의 삶에 적용할 진리가 풍성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에스겔서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환상들 때문입니다.

 

에스겔을 읽으면서 우리가 환상을 풀이하려고 하면 읽을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에스겔은 유독 날짜와 장소를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일어난 일이 실제있었던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환상들은 단순히 상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과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은 하나님의 회복과 생명을 강력하게 상징합니다. 에스겔은 이러한 환상을 통해, 지금 당장은 고통스러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미래의 회복을 가져올 것임을 선포했습니다.

 

구약학자들에 의하면 예언서 중에서 에스겔서가 가장 뛰어난 문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면 잘 구별되지 않지만 히브리 원전을 보면 에스겔은 가장 유식하고 화려한 문체를 사용했고,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고,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습니다. 머리가 좋고 뛰어난 사람이라면 생각도 많고 살아갈 때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같습니다.

전환문> 에스겔의 고민과 갈등이 무엇일까요?

대지1 > 에스겔의 세 가지 질문을 하나님께 했습니다.

에스겔이 가졌을 갈등과 고민은 단지 에스겔만의 갈등이 아니라, 사실상 당시 유다 포로 전체의 고민과 갈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어떻게 이방인들에 의해 멸망당했는가?

이것은 바벨론에게 멸망 당한 유다 백성의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데, 아무리 우리가 잘못했다고 해도 어떻게 악한 이방인들에 의해 이처럼 비참하게 멸망당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이처럼 포로로 잡혀와서 이러한 포로 생활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적용>

사실 이런 갈등은 우리에게도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다 잘 먹고 잘 사는데, 돈도 잘 벌고 성공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인 나에게는 이런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나는가?’

 

2)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가?

이것은 훨씬 더 절박한 질문입니다. 이미 망하고 포로가 된 채로 벌써 수년이 지났는데, 과연 자기들에게 소망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점점 더 강해지고 그들에게 잡혀 있는 유다 백성은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으며, 더구나 전혀 회개할 기미도 안 보이는데, 정말 이 백성에게 소망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이것은 앞의 두 질문을 포함한 근본적인 질문과도 같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이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질문입니다.

 

적용>

대부분의 경우 신앙인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때 가장 먼저 내리는 결론이 ‘하나님은 나를 버리신 것 같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지금 함께 계시다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에스겔의 이러한 고민은 무슨 한가한 철학적인 고민이 아닙니다.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아주 심각하고 중요한 고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고민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런 힘든 고민과 갈등을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쏟아 버리거나, 그냥 묻어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이 고민을 그대로 들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중요한 핵심입니다.

 

전환문> 에스겔은 세 가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했나요?

대지2 > 그는 그발 강가로 나아갔습니다.

신앙인은 이제 살아가면서 고민을 해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데, 그 기준대로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민과 갈등이 없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이 고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에스겔이 그렇게 했습니다. 에스겔은 그 젊고 똑똑한, 그러나 망한 민족의 포로 된 제사장으로서의 갈등과 고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기도했다는 말이 없는데 에스겔이 기도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의 소명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1-3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본문에서는 두 번에 걸쳐 그가 부르심을 받을 때 그발 강가에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발 강가라는 장소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발 강은 특별하거나 유명하거나 무슨 영적 의미가 있는 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정해주신 장소도 아닙니다.

 

그발 강은 유다 민족이 포로로 잡혀 와서 살아가는 바벨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강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왜 그곳을 그렇게 강조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그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발 강가가 갖고 있는 특별한 의미 때문입니다.

 

강가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원으로 가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기도하기 위해 강가나 광야로 나갔습니다. 특별히 강가는 이방 지역이나 낯선 곳에 갔는데 기도하고 싶을 때, 정말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싶을 때 가는 곳이었습니다. 성경의 몇몇 구절이 이러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행 16:13) 빌립보에는 유대인 회당이 없었기 때문에 바울 일행이 기도하기 위해 강가로 나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 137:1)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들 중 에스겔도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그발 강가로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스겔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중요한 영적 메시지입니다.

 

적용>

살면서 갈등이 있을 때, 고민이 있을 때, 고통을 경험할 때, 모든 문제를 가지고 나의 그발 강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에 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처절하게 엎드려 이 모든 사정을 아뢰고 응답받아야 합니다. 얼마가 되었든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은커녕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아서 기도했는데, 기도하는 중에 오히려 완전히 나빠질 수 있다는 겁니다.

 

에스겔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는데도, 나중에 그가 들은 소식은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가장 심각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제사장에게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절망과도 같은 소식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스겔은 그런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고민과 갈등이 바뀔 때까지, 사실은 하나님이 바꾸어주실 때까지 기도한 겁니다.

 

적용)

사실 우리가 기도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 때가 더 많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내 마음의 묵상 주제가 바뀌는 것을 경험합니다.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감정적인 정서가 바뀌는 겁니다. 기도하다 보니까 내 생각이 붙들려 있는 어떤 내용이 바뀌는 겁니다. 또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비관적이었는데 소망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럴 때까지 우리는 계속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그렇게 될 때까지입니다. 내 정서와 생각과 시선이 바뀔 때까지 계속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바꾸어주십니다. 그때까지 몸부림치며 기도해야 합니다. 환경은 바뀌지 않았는데 내 마음이 바뀝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고 포기하지 않은 시간 동안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절망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성령의 능력인줄 믿습니다.

 

에스겔서는 성령에 민감한 책입니다. 구약성경에 성령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루아흐’가 350번 이상 나오는데, 그 중 에스겔에서만 52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성령을 정말로 경험한 사람입니다.

성령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고민과 갈등과 절망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새로운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에게 응답이 왔습니다. 결론적으로 그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전환문> 절망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대지3 > 에스겔이 고민과 갈등했던 문제를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어째서 악한 이방인에게 멸망을 당했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진실로 너희의 사방에 있는 이방 민족들이 스스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겔 36:7, 새) 그의 고민에 대해 하나님은 ‘너희가 당한 수치를 내가 반드시 갚아 줄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응답하셨습니다.

 

둘째로,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겔 37:7, 10)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겔 37:7, 10) 더 이상 소망이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대해 하나님은 마른 뼈가 살아나 생기를 얻어 군대를 이루는 환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여기서 ‘마른 뼈’는 소망이 없음을 상징하고, ‘생기’는 생명, 곧 소망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죽은 것 같은 이 백성이 살아나고, 그들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겔 47:1-5, 새)

5 ‘그가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렀는데, 거기에서는 물이 내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쳐서나 건널까,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물은 아니었다.” (겔 47:1-5, 새)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겔 48:35)

에스겔의 세 번째 고민에 대해 하나님은 엄청난 규모의 성전을 보여주심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아주 새로운 성전과 그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아름다운 제사와 예배가 일어나는 장면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너희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져서 발목에, 무릎에, 허리에 차더니, 이제는 건널 수 없을 정도의 강이 되어 흘러 세상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염두에 두시고 초막절에 성전에서 물을 흘려 보내는 행사를 보시고 “나를 믿는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리라.”라고 하셨습니다(요 7:38). 새로운 성전,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백성이 된 우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놀라운 소망의 메시지를 에스겔에게 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는 온 세상이 다시 한 번 하나님 나라로 재정립되기 시작합니다. 각 지파별로 해당하는 몫이 주어지고, 그 한복판에 성소가 세워집니다. 성읍에는 각 지파의 수에 해당하는 열두 개의 문이 달려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완성한 후 그 성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고 부릅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께서 그곳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강력하게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와 그저 함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서, 너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세상을 구원하는 그 역사에 네가 나와 함께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까지 이어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에스겔은 질문이 바뀌어서 새로운 깨달음이 되었습니다. 갈등이 변해서 꿈과 비전이 되었습니다. 의심이 바뀌어서 확신과 삶의 방향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발 강가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질문과 갈등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아무 고민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지만 또 기억할 것은, 고민만 하는 신앙은 더 신앙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런데 항상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 저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건 더더욱 신앙이 아니라는 겁니다.

진짜 신앙은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인지 고민하면서 그 고민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현실을 보니까 믿음과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삶의 고민과 문제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있습니다. 그런 게 있다고 신앙인이 아닙니까? 신앙인입니다. 진짜 신앙인은 바로 그런 것들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민과 갈등을 가지고 그발 강가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십시오. 거기서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놀라운 응답으로 역사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결론: 에스겔서를 통한 우리의 배움

에스겔서는 고난과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희망과 비전을 붙잡으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의 환상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삶에도 적용되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삶의 어려움 속에서 묶이고 막혀 있을 때, 눈을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절망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십니다. 에스겔서가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난을 초월하시는 영광과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금의 어려움을 넘어서는 믿음과 소망을 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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