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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탄식기도 : 예레미야15장 10-21절

by 노-박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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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탄식기도 : 예레미야15장 10-21절

 

제목: 예레미야의 탄식기도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우상숭배로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예레미아를 통하여 마지막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고 이제 너희 유다도 망한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유다 민족은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너희 바벨론에게 망할 것이니 애굽에게 협력하지 말고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예레미야

 

제목: 예레미야의 탄식기도

성경말씀:  예레미야15장 10-21절

 

10.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12.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 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14. 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

 

 

 

15.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인생은 번지점프와 같아서 믿음 없으면 죽는다’라는 말씀입니다.

살다보면 오늘 죽을 것 같은 막막함에 있다가도 좋은 날이 오는 것을 경험 합니다.그런데 좋은 날 역시 다시는 힘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또 힘든 일이 생기고...이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교회 탐구센터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새신자들이 교회를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삶의 어려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질문을 받은 새신자들 중에 많은 약 76%의 응답자들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혼란을 겪거나 경제적인 어려움, 인간관계 어려움, 신체적인 질병 등의 고통의 순간에 교회를 찾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삶의 고통과 아픔은 분명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우리의 믿음은 더욱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레미야의 두려움과 걱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동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지만, 죄악으로 가득 찬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는커녕 예레미야까지 미워하며 위협을 가합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돌이키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위협하고 핍박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많은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사람처럼 불행하게 산사람이 또 있을까요? 욥도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했지만 오늘 말씀의 주인공 ‘예레미야’도 역시 너무나도 힘들어서 테어난 날을 저주하며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오늘말씀 15장10절에 ‘어머니 왜 저를 낳으셨나요?

저는 가는 곳마다 저를 욕하고 덤벼드는 사람들과 마주칩니다. 저는 싸울려고 태어났습니가? 내가 누구에게 돈을 빌린적도 없고 물건을 훔친적도 없는데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저주하고 수군거립니다.’ 예레미야 20장14절- ‘내가 태어났던 날은 저주를 받은 나, 내 어머니가 나를 낳았던 날은 복을 받지 못한 날이 되어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이유 없이 비난을 하는데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요?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우상숭배로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예레미아를 통하여 마지막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고 이제 너희 유다도 망한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유다 민족은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너희 바벨론에게 망할 것이니 애굽에게 협력하지 말고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비교적 젊었을 때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선지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유다왕 요시야13년부터 시드기야 왕 때 예루살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그는 약 40년간 선지자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유대지방은 종교적 부패와 우상은 예루살렘 성전 여기저기 거리에서 경배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은 더러워졌고 인신의 희생이 여전히 행해졌습니다.

 

그는 이런 비극을 보고 다가오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리고 백성들이 염병에 죽고 칼에 맞아죽고, 굶어 죽고, 나머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했습니다. 지금 번득하게 잘 살고있는 유다민족에게 바벨론에게 망한다고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망하지만 70년 만에 다시 돌아올 거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의 예언을 들어주기는커녕 그를 비난하고 심지어 저주했습니다(15:10). 우리나라도 남북이 갈라졌습니다. 미래 예측을 잘하는 어떤 예언자가 나타나서 ‘곧 북한이 쳐들어온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믿겠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이러한 일로 마음의 상처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마음의 상처를 안고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예레미야는 사람들이 자기의 예언을 들어주기는커녕 저주하는 동족들을 향해 원한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15절: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한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자기를 못살게 구는 백성들에게 원수를 갚아 달라는 예레미야의 기도 속에는 어두운 마음이 숨어 있었습니다.

15절에서 예레미야는 기도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주위에는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의 음모가 늘 따라다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이 그를 왕의 시위대 뜰에 있는 구덩이에 던져 넣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적도 있었고 그래서 늘 고독하고 외로웠습니다.

 

그가 외로웠던 모습을 17절에 기록되었습니다.

17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여러분도 이런일 없으셨나요? 다른 사람들 마음껏 즐겁게 지낼 때 하나님을 믿음으로 곤경에 빠지거나 외롭고 힘들었던 일 말입니다. 이렇게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모임에도 가지 않고 외롭게 혼자서 거룩한 소명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좋게 보는 사람들이 없었고 그래서 외로움이 분노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분노도 들어 있었습니다.

 

분노가 무엇일까요? 실망감이 쌓여서 표출된 감정입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이 쌓여서 분노가 표출된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습니까?’ 동족을 향해 부르짖는 나의 예언의 말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들리게 하시다니 하나님께서는 정말 살아계시는 겁니까? 정말 살아계신다면 이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까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레미야가 젊어서 소명 받았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생수의 근원’(2장13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18절에 보면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와 같은 분’(15장18절)이라고 합니다. 주는 물이 넘쳤다가 말랐다가 하는 종잡을 수 없는 시내처럼 나를 대하실 작정인가요? 라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그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분노에 사로잡혀 원한을 품은 채 바라본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변덕스러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가 이렇게 마음의 병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수 많은 사람들에게 받는 비난과 따돌림을 당하는 소외감. 열등감 절망감 적대감 등이 심리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현대인들이 흔히 말하는 ‘신경증’ ‘노이로제’에 걸린 것입니다.

 

‘신경증 환자’ ‘노이로제 환자’는 자신이 여력이 없음에도 과도한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한다는 습성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이 다 떠안으려고 해서 오히려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슈퍼맨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해결사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런 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이런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내적 갈등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은 하지만 메마른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서 그의 내면은 분열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사랑과 화평을 말하지만 돌아서면 비난하고 헐뜯게 됩니다. 가면적인 인격을 통해 상처를 주고받고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은 자신도 모른 채 서서히 자기의 인격이 파괴됩니다. 마음이 무너져도 깊은 자각 증상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결국 자기가 안고 있던 모든 문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왔다고 여기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원한을 품고 심지어 하나님을 향해서도 깊은 분노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처럼 ‘어찌하여 저의 상처가 낫지 아니합니까’(18절)말을 합니다. 그는 자기를 불쌍하고 딱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자기를 바라볼 때 자기 연민 속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가끔 드라마에서 때때로 부부간의 갈등을 하면서 자식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내가 너의 아버지 또는 엄마와 헤어지지 않는 것은 너 때문이야’라고 자식에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자신도 모르게 자식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시험에 들고 상처를 입으면 하나님을 멀리하려고 합니다. 원망과 분노로 아니면 버린 것 같아서...그러나 그럴수록 더 가까이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삶의 청중이 아니라 내 삶에 주관자이십니다. 신앙생활을 잘했는데 재산을 다 잃어버리거나 가족이 갑자기 어려움을 당하고, 명예를 잃어버릴 경우 감당하지 못할 고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만날 때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위기와 고통은 더욱 강하게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임을 이거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레미아는 동족에게 위협을 당하고 하나님 마저 자신을 돕지 않으시는 것 같은 위기의 순간에 놓인 예레미야였지만 그는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가면을 던지고 가식을 멀리한 채 다시 주님 앞에 기도의 자리로 나오기 바랍니다. 경건하지 않고 근사하지 않은 기도는 아니지만 ‘하나님 두려워요. 우울해요.’ 화가 난 모습 그대로 예레미야처럼 주님 앞에 나오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 예레미야를 회복한 것처럼 회복시켜주십니다.

 

전환문> 예레미야를 어떻게 회복시켜주십니까?

대지1> 회개하면 너를 다시 세워준다고 하십니다.(19절)

 

 

19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내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탕자이야기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 앞으로 돌아온 것처럼 ‘내가 돌아오면 ...’이라고 오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합니다. 안아주고 받아주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만약 내 마음이 상처투성이라면 그 원인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 원인을 다른 사람이나 교회나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 자신의 불신앙에서 왔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세상이 어둡게 보이고 모든 사람들이 악하게 여겨지고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의심스러울 때 변해야 하는 것은 오늘 말씀처럼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울 뿐만 아니라 ‘너는 나의 입’이 될 거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간다고 합니다.

 

예레미야처럼 하나님 앞에 나가 눈물로 회개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싸매주시고 위로를 통해 상처와 슬픔을 이겨나갈 힘을 주십니다. 새로운 능력을 주십니다.

 

전환문> 하나님앞에서 울 때 기도할 때 어떤 능력을 주실까요?

대지2> 놋 성벽같이 견고한 사람으로 세워주십니다.(20절)

 

 

20절: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견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아 더 이상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을 놋 성벽처럼 견고한 사람으로 세워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후부터 상처받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백성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예언자로 변모하게 됩니다. 상처의 자리에서 은혜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상처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것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예레미야처럼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그동안 잊어버렸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삶의 문제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서 말씀처럼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그냥 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처럼 마음을 추수리고 힘내어 주님의 제자로 살기를 결단하며 은혜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전환문> 은혜의 자리로 나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대지3>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21절)

 

 

21절 :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여러분은 어떤 상처를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 어떤 상처와 고난가운데 계신가요? 우리는 얼굴모습이 다른 것처럼 모두가 각기 다른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많은 상처를 받은 예레미야를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예레미야처럼 고통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상처받은 치유자는 곪아 터진 상처에서 새 살이 돋아나오는 것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상처로 인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또한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반드시 치유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람이 될 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새 생명의 역사는 크게 일어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삶 속에서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 자체로 상처덩어리입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이 먹을수록 외상의 흔적만 늘어 갑니다. 외상을 잊지 못하는 피해자는 자신이 싫어했던 외상을 다른 사람에게 남기는 가해자가 되고 맙니다.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외상의 희생자가 됩니다.

 

여러분도 예레미야와 같이 상처받은 치유자로서 새 생명의 역사를 세워나가시기 부탁합니다. 우리의 상처가 또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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